일제 강점기 - 독립운동 - 1920년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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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0년대 만주에서의 무장 투쟁
  • 1920년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중심의 독립군 연합 부대가 만주의 봉오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.
  • 1920년 일본의 사주를 받은 마적단이 일본 영사관을 불태웠다.
  • 1920년 김좌진이 이끈 로 군정서 중심의 연합 부대가 청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었다.
  • 1920년 일본군은 봉오동·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간도 참변을 일으켰다.
  • 1920년 간도 참변 이후 독립군은 밀산부에서 대한 독립 을 결성한 후 자유시로 이동하였다.
  • 1921년 자유시로 이동한 독립군은 러시아 혁명군에 의해 무장 해제를 당한 자유시 참변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.
  • 1920년대 중반에 만주에는 행정 기능과 군사 조직을 갖춘 참의부, 정의부, 신민부의 3가 결성되었다.
  • 1920년대 중반에 일제가 중국 군벌과 미쓰야 협정을 체결하여 독립군을 탄압하였다.
  • 1920년대 후반에 독립군은 민족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3부 통합 운동을 벌여 북만주에 민족주의 계열의 신 의회, 남만주에 사회주의 계열의 민부로 재편되었다.
1920년대 의열단의 활동
  • 1920년대 의열단은 원봉을 단장으로 김익상, 김상옥, 나석주 등이 단원으로 활동하며, 암살·파괴·폭파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.
  • 1920년대 의열단은 김원봉의 요청으로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다.
  • 1920년대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은 푸 군관 학교에 입교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.
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침체
  •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남만주에 육군 주만 참의를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벌였다.
  •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승만의 위임 통치 청원 사건을 계기로 상하이에서 국민대표 회의를 열어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였으나, 창조파와 개조파의 대립으로 결렬되었다.
  •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민대표 회의 이후 이승만을 탄핵하고 을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후 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개편하였다.